한국 영화는 지난 수십 년간 급격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며, 계급 문제를 중심으로 한 현실 인식의 변화를 깊이 있게 다뤄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계급은 단순히 배경적 요소로 소비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 구조의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기생충>, <버닝>, <부산행>, <미싱타는 여자들>, <한공주> 같은 작품들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세밀하게 포착하며, 단순한 빈부의 격차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생존의 문제로 확장시켰다. 본문에서는 한국 영화가 계급 문제를 어떻게 재현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인식이 어떻게 심화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 영화가 마주한 현실의 벽
한국 영화의 발전사는 곧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 변화를 반영하는 기록이다. 산업화 이후 빠른 경제 성장은 사회를 두 개의 극단으로 나누었다. 상류층은 더 부유해지고, 하류층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불평등의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1990년대 이후 영화의 주요 주제로 등장했다. 과거의 영화들이 주로 가족, 사랑, 사회적 갈등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영화는 점점 더 계급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2000)는 이를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지하에서 사는 주인공의 삶은 사회적 위치를 은유하며, 그가 개를 찾아 헤매는 과정은 계급의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이후 봉준호의 <괴물>(2006)은 단순한 괴수 영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 시스템의 무능, 서민층의 무력함, 그리고 권력의 폭력을 동시에 드러내는 계급의 은유였다. 2019년,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계급 서사를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반지하 가족과 고급 주택의 가족이 교차하는 공간적 대비는 단순한 빈부격차의 재현을 넘어, 계급 간의 감정적 단절과 폭력적 구조를 해부했다. 특히 계단, 반지하, 빗물 같은 상징들은 시각적 은유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영화들은 계급을 ‘배경’이 아닌 ‘주제’로 끌어올렸고, 관객은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현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 영화는 이제 사회의 거울이자, 비판의 언어가 되었다.
변화하는 현실 인식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의 계급 서사는 단순한 사회적 구분을 넘어 ‘구조적 폭력’의 문제로 확장된다. <기생충>에서 봉준호가 보여준 것은 계급 간의 전쟁이 아니라, 이미 고착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의 비극이었다. 그 영화의 결말은 희망이 아닌 순환의 절망을 말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겠다고 다짐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그 절망은 현실 그 자체다. 이창동의 <버닝>(2018)은 또 다른 차원의 계급 인식을 제시한다. 종수는 사회 하층민으로서 무력함의 끝에 서 있고, 벤은 그 무력함을 조용히 지켜보는 상류층의 초월적 존재다. 벤은 종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모든 것이 ‘심심해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단 한마디는 상류층의 냉소적 인식을 압축한다. 계급은 이제 단순한 소득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의 차이’,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으로 정의된다. 연상호의 <부산행>(2016) 역시 좀비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철저한 계급 비판 영화다. 생존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자를 내친다. 부유층 인물들은 공동체의 생존보다 자기 보존에 집착한다. 영화는 ‘누가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본주의적 생존 본능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최근의 <미싱타는 여자들>(2021)은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통해 계급 문제를 다시 환기한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노동자 계급의 재현을 넘어, 비정규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등 현대 사회의 새로운 노동 구조를 담아낸다. 영화는 노동의 가치와 존엄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를 고발하며,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화’하는지를 비판한다. 이처럼 한국 영화는 계급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으로 축소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인간의 관계, 감정, 생존의 방식, 그리고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통째로 흔드는 문제로 진화했다. 현실 인식의 변화란, 결국 관객이 더 이상 ‘타인의 계급’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다. 결국 한국 영화는 계급 문제를 통해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비극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성찰의 시작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한국 영화 속 계급 서사는 단순한 비판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구조적 모순을 인식하게 만드는 철학적 질문이다. <기생충>의 폭우 장면에서 반지하가 잠기고, <버닝>의 종수가 분노 속에서 폭력을 택하며, <부산행>의 승객들이 서로를 버리는 장면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는가?’ 계급 문제는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상류층의 여유는 하류층의 절망 위에 세워져 있고, 그 구조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한국 영화는 이 모순을 시각적으로, 감정적으로, 철학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절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영화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싱타는 여자들>의 여성 노동자들은 끝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친다. <소공녀>의 미소는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선택한다. 이들은 거창한 혁명을 이루지 않지만, 자기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계급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한다. 결국 한국 영화의 계급 서사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그 속에서 관객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성찰한다. 영화는 더 이상 단순한 이야기의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도덕을 묻는 철학적 언어이며, 사회가 외면한 진실을 말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계급의 벽은 여전히 높지만, 영화는 그 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이제 더 이상 ‘그들’과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모두의 이야기다. 한국 영화는 계급의 문제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지만, 영화는 그 미완의 상태 속에서 가장 깊은 진실을 포착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 영화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다.